헤이리 8번 입구에서 가까운 그의 작업실은 심지 굳은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듯 박스형태의 회색톤의 건물로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은 옆쪽과 뒤뜰로 이어지는 푸른 잔디와 어우러져 산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을 대변하는 양 자연과 인간이 조화하듯 서 있었다. BBU는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딴 작업실 이름으로 그의 서재와 암실이 있고 그가 작업한 것들을 정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침햇살이 넉넉하게 스며드는 오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최근 그의 작품들을 총 망라한 사진집 『사진작가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 100권에 싸인을 하는 중이었다. 팬들을 위해 각기 다른 소나무를 산수화 그리듯 펜 끝으로 그리고 싸인과 직인을 찍어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어요. 그냥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비를 들여 돌아다니고 남겼죠.”
지금은 유명해져 세계 각지에서도 그의 사진을 사려고 몰려들지만 그에게도 무명시절은 있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회화를 그려내는 방법이 꼭 붓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사진 작업. 그는 ‘우리나라를 자연을 알릴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어디서나 찾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나뭇결에서 힘을 느낄 수 있어 남자의 상징으로도 불리는 소나무를 카메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화가가 그랜드캐년을 그리면 어떻게 보일까요? 겸제 정선이 금강산을 그리고 한강에서 벼슬하면서 한강의 산수를 그렸듯 이는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지요.”
그는 과거 우리나라 산지의 60%가 소나무였는데 현재는 20%밖에 남지 않고 버드나무가 많이 늘면서 소나무 사진을 찍다보면 자연스럽게 버드나무도 담기게 마련이라고 했다. 부드러움을 대변하는 버드나무는 여자를, 강인함을 대변하는 소나무는 남자를 상징해 이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 역시 멋스럽다고 전했다. 이렇듯 자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담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진작가가 굳이 유명한 미국배우를 찍으러 할리우드까지 가야 하나요? 배용준, 김연아 등 세계적인 국내 스타들을 찍어서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더 올바른 길이죠.”
지금은 사진을 별도의 과목으로 분리시키고 있지만 사실 사진의 시초는 회화 표현의 다른 방법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배병우 작가. 사람들이 그림과 사진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서 편견이 생기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동양화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표현하는 소나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 예술적인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자욱한 안개 속, 몽롱한 듯한 이미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린 듯한 그의 소나무 사진은 비가오나 태풍이 오나 역경 속에서 작업한 그의 노력이 묻어난다.
“지난 달 태풍이 불 때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죠. 거대한 에너지가 지나가는데 얼마나 신이나던지…”
“햇볕이 쨍쨍할 때는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은가. 남들과 같은 노력을 들여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응당 그가 던지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드라마틱한 날씨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그린 남녀의 사랑씬도 폭풍이 부는 날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느냐며 어떤 작업이든 시련과 고통을 감내한 자에게 그 대가가 돌아간다고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제주 오름 촬영은 제주도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스무 번도 넘게 제주도를 찍었지만, 그동안 뭘 찍었는지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가지라도 해 두고 싶어서 평소 생각했던 제주에 대한 형상성을 오름으로부터 전개하였다.
나는 제주라는 섬을 세 가지로 해석한다. 볼록의 형상과 오목의 형상 그리고 수평의 형상이 그것이다. 볼록의 형상은 오름을 통해서, 오목의 형상은 벨리를 통해서 그리고 수평의 형상은 바다를 통해서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볼록의 제주 오름을 찍고, 곧 수평의 바다와 만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오목의 벨리도 찍을 것이다.
제주는 너무도 단순한 선과 형을 갖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사진작가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 중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진을 하고 싶다면 기획부터 잡아 잡지사에 이야기를 해봐라.”
젊은 시절 그는 <행복이 가득한 집>에 전국에 소나무가 있는 집 사진은 다 찍어주겠다면 잡지사에 기획안을 넣은 것이 발탁되어 1여 년을 함께 작업했다. 그러면서 그는 원하던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더불어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얻었다.
“앉아만 있는다고 기회가 오지는 않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꾸미는 것도 중요해요.”
서울예술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는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던졌다.
자신의 이름이 빛날 병(炳)에 비 우(雨)자를 써서 “햇볕이 쨍쨍한 날이나 비가오나 일을 해야한다는 의미”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촬영하다 카메라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궂은 날씨 속에서 촬영을 강행하는 그. 그의 수제자 주호석 군은 “선생님께서 과거 유도했던 경력이 있어서 기본적인 체력이 대단하다”며 아직도 청춘 같은 그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다.
촬영할 때 같이 다니면 흐름이 끊기기에 늘 혼자 다닌다는 배병우 작가. 기억에 남는 것은 장소보다 빛이나 날씨 상태라며 “어떤 장소가 좋은 촬영지가 아니라 광선의 상황에 따라 같은 장소라도 아름다운 장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이다.
그는 비단 소나무만 카메라에 담은 것이 아니다. 국내 유수의 건축물, 그 중에서도 창덕궁은 10여 년을 넘게 담았고 그 중 180점을 엄선해 한국인과 외국인들을 위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사진집을 펴내기도 했다.
앞으로 단기 몇 년간, 장기 10년 이상의 여러 프로젝트를 현재 진행 중이라는 그에게 사진작업은 언제까지 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죽는 순간까지”라며 우리나라 대표 사진작가로서 옹골진 모습을 보였다.
배병우 사진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첫 번째 단행본 『사진작가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에는 작가의 20대 청춘 시절의 마라도, 바다 사진, 소나무 사진들, 그리고 프로젝트로 작업한 종묘, 창덕궁, 알함브라 궁전, 타히티를 비롯해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촬영한 다양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진행 : 최선희 기자 archy77@naver.com
자료제공 : BBU www.cyworld.com/bbuart, 컬처북스 culturebooks@hanmail.net 02-3141-6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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